현실이 된 영화 속 가족: '어느 가족'이 말하는 한국의 연금 현실
일본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영화 ‘어느 가족’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며 살아가는 비정형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가 더 이상 영화만의 허구가 아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에서도 영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바로 ‘연금’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노인의 연금을 가족이 계속해서 수령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며, 노후 소득 문제와 연금제도의 허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지 영화적 감동을 넘어, 가족, 사회복지, 그리고 노후 자산 설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한국도 ‘초고령사회’ 진입…노후 생활비와 연금의 불균형
2023년 11월 기준,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20.1%로, 한국은 명실공히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하지만 이들 노년층의 고령화 속도에 비해 연금 등 노후자금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은퇴 후 부부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는 월평균 336만 원, 최소 생활에 필요한 비용도 240만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얼마나 제공하고 있을까?
- 국민연금 전체 평균 수령액: 약 67만 원(2023년 기준)
- 2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수령액: 약 108만 원
부부가 평균 수령액을 각각 받는다고 하더라도 월 134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최소 생활비 기준으로도 월평균 100만 원 이상, 최대 200만 원 이상 부족한 상태다. 부담이 늘어난 은퇴 세대는 결국 노후 빈곤의 위험 속에 놓이게 된다.
영화 ‘어느 가족’이 던진 질문: 연금은 누구의 몫인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단지 불우한 가족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실제 모티브는 1988년 도쿄에서 벌어진 연금 부정수급 사건이다. 노부부가 사망한 뒤, 가족이 이를 알리지 않고 연금을 계속 수령하다 적발된 그 사건은, 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속 하츠에 할머니는 사실상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함께 사는 가족과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러나 공식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가족’은 이들 가족이 할머니의 사망을 신고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연금은 이들에게 삶의 최후 보루며, 사회로부터 온전히 버림받은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망보험금을 노후 연금으로? ‘유동화 제도’ 도입 가속화
이처럼 부족한 노후 자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근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바로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란?
기존 사망 시 일시금으로 지급되던 사망보험금을 은퇴 이후 ‘연금’ 형태로 미리 전환해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특히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 신청 가능 연령: 만 55세부터
- 유동화 비율, 수령 기간 등 자유롭게 설정 가능
- 중도 신청 중단 및 재개 가능 (유연한 운영)
- 은퇴 직후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 대응
해당 제도는 지난해 10월부터 대형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도입되었으며, 2024년 1월부터는 19개 모든 생보사로 확대 적용된다.
유동화 성과는?
- 총 신청 건수(1월 15일 기준): 1,262건
- 총 지급액: 57억 5천만 원
- 1건당 평균 유동화 금액: 약 455만 원
- 월환산 수령액: 약 37.9만 원
- 평균 신청 연령: 65.3세
- 평균 유동화 비율: 89.4%
- 평균 수령 기간: 약 7.8년
이 수치는 보험금이 크지 않더라도, 유동화 비율을 높이고 기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노후 생활자금을 보완하고자 하는 니즈가 강하다는 보고로 해석된다.
월지급형 상품부터 요양 서비스까지…2024년 변화 예고
정부와 보험업계는 이 제도가 보다 많은 고령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월지급 연금형 출시 예정
현재는 보험금을 일 년 단위로 나눠 지급하는 ‘연지급형’이 중심이지만,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월지급형 연금’ 상품도 2024년 3월 중 출시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생활비처럼 매월 일정 금액을 수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존 연지급형 고객도 수령 시점에서 월지급형으로 전환 가능하다.
헬스케어, 요양 연계 상품도
금융위원회는 향후 유동화 서비스를 단순한 금전 지급에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서비스 연계형 상품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 헬스케어·요양 연계 서비스형 유동화
- 치매머니 관리를 위한 신탁 활성화 방안
- 치매 특화 보험상품 개발 및 보급
보험·금융제도가 생활 밀착형으로 진화하며, 단순한 재정적 보장뿐 아니라 전반적인 노후 복지와 연결되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다.
사망보험금, 가족을 위한 연금이 될 수 있을까?
‘사망보험금’은 본래 보험수익자가 남겨질 가족을 위한 최후의 방패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를 통해 이 ‘죽음 이후의 자산’이 ‘삶을 위한 자산’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미리 연금화하여 활용하는 방식은 빈틈 많은 한국의 공적 연금제도를 보완하고, 개인에게 보다 유연한 노후 대비 수단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모든 제도의 근간에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노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영화 ‘어느 가족’은 법적 가족도, 도덕적 잣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진짜 가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는 사회가 그 가족들을 위해 제도와 정책으로 응답해야 할 차례다.
마무리: 영화에서 현실로 이어지는 연금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결코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한 가족의 연금 의존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노후 빈곤, 제도 허점, 그리고 보험의 진화까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
2024년 이후 더욱 확대될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는 단지 보험의 진화가 아닌 우리 사회 노후 대비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시그널일 수 있다. 연금 설계와 보험 전략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지금이야말로 나와 가족을 위한 노후 준비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