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되고, 시간만 잡아먹는다"…실손보험 전환이 어려운 진짜 이유
최근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목표로 실손의료보험의 전환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낮은 보험료를 기대하며 1세대 및 2세대 실손에서 3세대 또는 4세대 상품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보험설계사의 소극적인 반응에 경로를 이탈하거나 제대로 된 안내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실손보험 전환 정책이 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정부의 방향성과 현실의 괴리를 짚어보자.
실손보험 전환 제도의 도입 배경
실손의료보험은 병원에서 쓰는 의료비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보장해주는 민간 건강보험 상품이다. '국민보험'이라 불릴 만큼 보편화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국민이 한 번쯤은 들었거나 고려해본 보험이다. 그러나 세대별로 보장 범위와 구조가 다르며, 오래된 실손은 보험금 청구 건수가 많아지면서 보험료가 급등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실손보험 ‘세대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의료쇼핑과 과잉진료의 폐해가 심한 1·2세대 실손 상품 가입자를 대상으로 3세대 및 4세대 상품으로 전환해 손해율을 낮추고, 보험료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실손 전환을 통해 보험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관련 제도 개편과 소비자 보호 방안도 함께 마련 중이다. 그러나 설계사, 소비자, 보험사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현장에서는 전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실손보험 전환이 어려운 이유
낮은 수익성 탓에 외면 받는 전환 상담
보험설계사 A씨는 고객이 실손보험 전환을 문의했을 때 "그거 해봐야 수당도 안 나오고, 오히려 시간만 낭비"라며 손사래를 쳤다. 현재 설계사 수당 체계에서는 실손보험 전환으로 거의 수익을 창출할 수 없어, 적극적으로 안내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손보험은 수수료 비율이 낮고, 전환 상담은 오히려 고객 응대 시간과 업무의 난이도만 늘린다. 따라서 대부분의 설계사들은 실손보험 전환보다 수당이 높은 암보험이나 건강보험, 또는 종신보험 등을 우선적으로 권유하는 구조가 일반화되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 접근성 부족
소비자 입장에서도 전환은 번거롭고 어렵다. 실제로 보험사가 콜센터 상담을 통해 전환 의사를 밝히면, 일선 설계사와 연결되는데, 이때 대부분 연관 상품 가입을 전제로 하는 상담이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60대 후반 A씨는 최근 실손보험료가 부담돼 2세대 상품에서 보험료가 저렴한 4세대 상품으로 전환을 요청했지만, 설계사는 이를 무시하거나 건성으로 상담하며 다른 고가 보험을 권유했다. 결국 고객의 불만을 키우고 전환률은 저조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실손보험의 구조적 문제: 손해율과 손해액
여전히 적자 구조에 시달리는 실손보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실손의료보험 보험손익은 마이너스 1조6226억원으로, 여전히 거대한 적자를 기록 중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손해율을 방어하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있고, 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간다.
실손보험의 경과손해율은 99.3%에 달하며 실질적으로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보험료는 2022년 14.2%, 2023년 8.9%, 2025년에도 7.5% 인상됐고, 2026년에는 7.8%의 평균 인상률이 예상되고 있다.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도 달라
보험료 인상률은 세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2026년 기준 예상 인상률은 다음과 같다.
- 1세대: 약 3%대
- 2세대: 약 5%대
- 3세대: 약 16%대
- 4세대: 약 20%대
그렇다고 해서 4세대 실손이 무조건 비싸다고만 보긴 어렵다. 3·4세대의 경우 청구 건수가 적고 보장 항목이 축소되어 해당 인상률이 실제 체감 인상보다 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복잡한 구조 속에서 소비자는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기도 어렵고,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제도 개선의 올바른 방향은?
보험설계사 유인 강화가 핵심
현장에서 실손 전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설계사 유인 구조’ 설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전환 상담에 따른 별도 KPI(핵심성과지표)나 인센티브가 보험사마다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하여 실질적인 보상 메커니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를 실행할 채널이 동기 부여가 안 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설계사 전환 보상 확대와 같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담 전환상담 부서를 별도로 만드는 등 실행 가능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 툴 및 자동화 기술도 대안
AI 기반의 자동 전환 시스템, 챗봇 상담 도입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이 설계사의 개입 없이 전환할 수 있는 플랫폼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보험사는 웹페이지를 통한 실손보험 전환 안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객의 이해도를 높이고, 자발적 전환을 유도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소비자가 알아야 할 실손보험 전환 정보
1. 내 실손보험이 몇 세대인지 확인하자
실손보험은 가입 시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1세대(2009년 10월 이전)
- 2세대(2009년 10월~2017년 3월)
- 3세대(2017년 4월~2021년 6월)
- 4세대(2021년 7월~현재)
보험증권 또는 보험사 앱·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모르는 경우 콜센터나 담당 설계사에게 문의하면 된다.
2. 전환 시 유의사항
- 1세대 실손보험은 약관상 재가입 조항이 없어, 향후 전환이 어려울 수 있음
- 기존 보험 계약을 해지하면서 새로운 계약으로 바꾸는 구조이므로, 과거 병력에 따른 ‘심사’가 있을 수 있음
- 보험료는 낮아질 수 있으나 보장 범위는 확실히 줄어들 수 있음
3. 정부 시책 적극 활용하기
정부는 2026년부터 ‘실손 계약 재매입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초기 실손 가입자 약 1600만 명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새 상품에 재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세부적인 소비자 보상책도 검토 중이다.
마무리: 실손보험, 전환이 중요한 이유
실손 의료보험은 국민 건강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민간 보장제도다. 그러나 현재 구조상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가 만족하기 어려운 모델로 운영되고 있다. 보험료는 계속 오르고, 보장 범위는 점점 줄어들며, 설계사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주소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정책의 방향성과 실제 실행 간의 괴리를 좁히는 일이다. 수익성만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건강불안을 해소하고 국민의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공적 가치가 반영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실손보험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소비자 보호를 원한다면, 정보를 제대로 알고 스마트하게 보험을 선택해야 한다.
